다단계 금융사기의 유래와 그 발달 과정
이탈리아 출신의 찰스 폰지는 1903년에 미국으로 건너와, 불법적인 도박과 무분별한 낭비를 일삼아 전과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1919년에 국제우편 요금을 지급하는 대체수단인 국제우편쿠폰의 환율 변동에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국외에서 대량으로 쿠폰을 사들여 미국에서 유통해 차익을 얻는 사업 아이디어를 떠올렸습니다.
폰지게임: 원금의 50~100% 수익 확약이라는 미끼
폰지는 투자자들에게 45일 후에는 원금의 50%, 90일 후에는 원금의 100%에 이르는 수익을 지급할 것을 약속하며 투자자를 모집했습니다. 이러한 약속에 투자자들은 끌려들어 가게 되었고, 수익금이 지급되자마자 재투자를 하고, 자신의 지인들을 2차 투자자로 모집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활동이 미국 전역에 소문이 퍼져 더 많은 투자자가 모여들어, 투자 총액이 몇 달 만에 막대한 규모로 불어났고, 촌지는 이 과정을 통해 몇 개월 만에 무일푼에서 갑부가 되었습니다.
폰지사기의 몰락: 금융피라미드의 진실
그러나 이 사업의 실체는 나중에 투자한 사람의 돈으로 먼저 투자한 사람의 수익을 지급하는 금융피라미드였습니다. 보스턴우체국에서는 촌지의 국제우편 사업을 허용한 전례가 없었으며, 국제우편쿠폰을 환전하는 데는 촌지가 투자자들에게 약정한 기일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이 때문에 일부 투자자들은 투자금 회수를 시작, 촌지의 사업은 순식간에 몰락했습니다. 1920년 8월, 촌지는 사기혐의로 구속되었고, 파산신고를 하게 되었습니다.
폰지사기: 다단계 금융사기의 대명사로
폰지는 이후 플로리다주에서 같은 방식의 사기 행각을 벌이다 다시 체포되어 징역 9년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이로부터 그의 이름은 금융피라미드의 원조로 언급되며, '폰지사기'는 다단계 금융사기를 가리키는 말로 통용되게 되었습니다.
버나드 메이도프와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폰지사기
2008년 12월, 미국 나스닥증권거래소 회장을 지낸 버나드 메이도프가 금융사기로 미국연방수사국(FBI)에 체포되어 다시 한번 다단계 금융사기가 사회적 이슈가 되었습니다. 메이도프는 1960년에 자신의 이름을 딴 증권사를 설립한 뒤, 약 20년 동안 신규 투자자의 돈으로 기존 투자자에게 수익금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최대 650억 달러에 달하는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다단계 금융사기를 벌였습니다.
이를 통해 메이도프는 다단계 금융사기의 역사에 또 다른 장을 쓰게 되었고, 그의 사건은 다단계 금융사기의 위험성과 후폭풍을 세계에 다시 한번 상기시켰습니다. 메이도프의 사건은 돈을 투자할 때 높은 수익률을 보장하는 모든 투자 기회가 합법적이거나 안전하지 않다는 점을 강조하였습니다. 특히, 신규 투자자의 돈으로 기존 투자자에게 이익을 배당하는 이러한 형태의 사기는 결국에는 새로운 투자자가 더는 발생하지 않을 때 붕괴하게 되며, 이 때문에 많은 사람이 큰 손실을 보게 됩니다.
폰지사기는 이처럼 매우 위험한 금융 사기로, 그 피해 규모는 때로는 개인이나 가족을 파산으로 몰아넣을 정도입니다. 이러한 사기를 피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높은 수익률을 약속하는 투자 기회에 대해 신중하게 접근하고, 투자 전에 충분한 조사와 검증을 거치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다단계 금융사기와 같은 금융 사기로부터 자신의 자산을 보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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